ふりがな
江の島の歴史
江の島歴史年表
江の島散策マップ
江の島の文化財
江の島を訪れた人々
資料種類しりょうしゅるい(大分類だいぶんるい):
資料種類しりょうしゅるい(中分類ちゅうぶんるい):
資料種類しりょうしゅるい(小分類しょうぶんるい):
時代じだいと場所ばしょ(大分類だいぶんるい):
時代じだいと場所ばしょ(中分類ちゅうぶんるい):
時代じだいと場所ばしょ(小分類しょうぶんるい):
作者さくしゃ(50音分類おんぶんるい):
作者さくし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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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4 아쓰타항의 나루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화면의 왼편 앞쪽에는 아쓰타 신궁의 하마노 도리이(신사 입구의 기둥문)가 있고, 뒷배경에 이세만이 펼쳐져 있습니다. 미야 역참에서 구와나 역참까지는 도카이도 유일의 뱃길이었으며 ‘7리 나루’(1리는 약 3.9km)라 불렸습니다.
도카이도 오십삼차 미야
2대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4 욧카이치 역참의 서쪽에 위치한 히나가 갈림길의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도카이도와 이세 가도로 길이 나누어집니다. 화면 중앙에 이세 신궁의 제2 도리이(신사 입구의 기둥문)와 상야등이 보이고, 많은 나그네들이 오가는 활기찬 갈림길의 분위기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도카이도 오십삼차 욧카이치
2대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4 화면 중앙의 양옆을 보면 돌담 기반에 봉토를 쌓고 꼭대기에 울타리를 두른 구조물이 있습니다. 이것이 역참 입구에 설치된 ‘미쓰케’라는 것으로 원래는 파수병 등을 두었던 군사 시설을 일컬었습니다. 도카이도가 정비되었던 에도 초기에는 가도나 역참이 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도카이도 오십삼차 이시야쿠시
2대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4 가도를 바삐 달려가고 있는 파발꾼과 파발꾼 가마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길옆에서 한가로이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의 정적인 풍경과 대비되어 가마꾼의 동적인 속도감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도카이도 오십삼차 쇼노
2대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4 언덕길 안쪽에 보이는 것이 가메야마성의 성문입니다. 이세카메야마번의 성하 마을이기도 하며 성터가 정비되어 지금도 돌담과 망루 등이 남아 있습니다.
도카이도 오십삼차 가메야마
2대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4 세키 역참에는 이세 신궁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어서 스승인 초대 히로시게 등도 이세 신궁의 도리이(신사 입구의 기둥문)나 다이묘 행렬의 본진을 그렸는데, 이 그림에는 전형적인 풍경은 없고 차를 끓이는 연기가 인상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에도시대 때에 널리 퍼졌던 이세차의 산지도 이 주변이었는데 이를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도카이도 오십삼차 세키
2대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4 미나구치 역참의 명물인 박고지를 만드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들고 있는 녹색 타원이 박고지의 재료인 박입니다. 이것을 끈처럼 깎은 것을 말려서 만듭니다.
도카이도 오십삼차 미나쿠치
2대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4 구사쓰 역참에서 비와호를 건너갈 때 배를 타는 야바세 나루의 건너편, 오쓰 역참의 이시바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등롱은 이시바의 상야등입니다.
도카이도 오십삼차 오쓰